나의영화편력

[공연]그와 그녀의 옷장 - 옷에 얽힌 우리네 삶

경차니 2009. 1. 18. 21:55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오랜만에? 내 기억으론 1995년인가 '지하철1호선'을 보고는 처음이지 않나? ^^;

 

그동안 집회나 열려진 공간에서만 보아왔던 '극단 걸판'의 공연이었다.

안산예술의전당 별무리소극장에서 열렸는데, 그 정도 규모의 연극을 하기엔 시설도 좋았다.

'그와 그녀의 옷장'이란 공연은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네 이웃들의 옷장속에 있는 '옷'에 관한 이야기이다.

 

2명의 절친했던 경비원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한명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비복 한벌을 쟁탈(?)하기 위한 이야기부터 첫출근하는 아들녀석의 양복 이야기, 기나긴 투쟁속에서 300일이 넘게 한번도 벗어보지 못한 조끼 이야기까지 -.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 공연은 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지만 등장인물이 서로 연결되면서 극에 몰입하기도 좋았으며 관객들의 웃음과 눈물을 유도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남자들은 평소엔 멀쩡하던 사람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변한다고 한다. 삐딱한 모자에 담배를 빼어물고 이 세상이 존재하는 온갖 불량해 보이는 자세와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옷, 옷차림은 그 사람의 규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무슨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고 시선도 달라진다. 또 어떤이에겐 평범한 작업복에 잠바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겐 몇십년간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인생을 함께 한 눈물젖은 옷일수도 있다.

 

쫓겨나갈지 몰라 두벌에서 한벌로 줄어든 '경비복'을 차지하기 위해 '의리'도 버리고 '양심'도 버리고 '자존심'도 버려야 하는 상황은 남들에겐 하찮은 '경비복'이 생존권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옷장속에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 수많은 작업복들과 그 '작업복'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굽신해야 했던 이야기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식에겐 어릴 때부터 좋은 옷만 입혀왔다며 첫출근하는 아들에게 넥타이를 선물했던 어머니, 하지만 그 아들이 결국 용역깡패가 되어 어머니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빼앗는 선두에 서서 어머니와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나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좋고 이쁜옷을 입고 자라야 반듯하고 훌률한 사람이 된다고 믿었던 어머니는 결국 그렇게 그 '번듯한 옷'들에게 위협받는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이쁘고 좋은 옷 입고 싶은데 300일 넘게 이 더럽고 이쁘지도 않은 이 조끼만 입고 있다며 힘겨운 장기투쟁을 이어나가는 아가씨와 그런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는 그 더럽고 이쁘지도 않은 조끼지만 그 '조끼'로 인해 더 많은 아름다운 인연과 아름다운 연대와 사랑을 만들어 나가게 되면서 '옷'이 이어주는 우리네 삶과 생활의 인연을 일깨워 주었다.

 

그럼 지금 나의 옷장엔?

나의 옷장엔 역시 많은 옷들이 있다. '작업복'이라고 특별히 별칭되는 옷은 없지만 그 하나하나의 옷들에게 얽혀진 시연과 이야기들-

대학 때 들뜬 마음으로 참가했던 한총련출범식 때 같이 입었던 티셔츠부터 뜨거운 여름을 거리에서 뛰어다니며 땀에 쩔어있지만 소중했던 옷들도 있고 졸업한다고 처음으로 사주셨던 양복부터 애인에게 처음으로 받았던 청바지, 결혼하면서 장모님이 사주셨던 잠바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가지각색의 옷들 속에 있는 이야기들 -

특히 노동자들에게 작업복과 투쟁조끼가 주는 자부심과 긍지, 애환과 연대의 이야기를 옷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해준 이번 공연은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다. 

 

좋은 옷보단 깔끔한 옷차림!

누구의 시선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옷차림!

자부심과 긍지가 옷차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