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암태도 소작쟁의]원칙만을 고집하지 않고 때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

경차니 2008. 10. 17. 15:43

'암태도 소작쟁의'는 지은이인 박순동씨의 단편작들을 모아 놓은 책이었다.

그중 ‘암태도 소작쟁의’가 가장 기억에 남고 많은 여운과 고민을 남겨 주었다.

시대배경은 1920년대, 31운동 이후 민족이나 개인의 자아발견에 민중들이 눈을 뜨고 1920년대 본격적인 언론과 매스컴의 성장 (지금이야 찌라시지만 창간 초창기엔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등장으로 일정정도 민중들의 계몽활동이 이루어졌다)이 눈에 띄는 시기였다.

그 수많은 사건들 중 소작료조정쟁의사건이 전국적으로 휩쓸다시피하던 시기 전라도 암태도라는 섬에서의 소작쟁의는 그 쟁의 내용도 치열했으며 기간 또한 1년여를 투쟁하면서 결국 당시 수확의 70%를 공납하던 소작료를 40%로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전개과정에 있어서 90여년이 흐른 지금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한편으론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벼 수확량의 70%라는 엄청난 양의 소작료를 거부하고 암태도의 소작인들은 벼수확을 계속 미루면서 지주와 기싸움을 펼친다. 벼를 일단 베자부터 일부 소작인들의 투항까지 이어지면서 투쟁을 이끌던 박복영은 '일을 저질렀으면 반드시 대책이 있어야 하고 수습과 대책이 없는 일은 반드시 꺾이게 마련'이라며 함께 대책을 숙의했고 '서로 결정한 일은 꼭 지켜야'한다는 말로 단결을 중시했다.

지금의 노동조합의 임금협상과 투쟁에서도 기초가 되는 기본중의 기본인 사항을 그 시절 역사의 한페이지에서 이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무조건 원칙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소작인들의 처지와 이해를 함께 고려하면서 결국 우선 벼를 먼저 베기로 하고 한다. 벼를 베는 것도 너따로, 나따로가 아니라 간부들이 합심하여 한날한시에 일괄적으로 벼를 베며 소작회의 결정없이 한톨의 벼도 지주에게 주지 않도록 엄격히 약속을 한다.

하지만 지주와의 협상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일부 소작인들이 지주의 달콤한 꾐에 넘어가 소작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지주측 사람들의 도발과 시비에 싸움도 벌어지고 이 일로 일제경찰이 개입하게 된다.

"아, 그거 지주 소작간에 삯이 비싸다 싸다 하는 승강인데 우리가 끼어들면 뭘 하겠소?"하는 당시 일제경찰의 말이나 지금의 비정규투쟁에서 보여지는 경찰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현실에 그 때 일제경찰과 지금의 경찰이 무엇이 다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리고 역시나 지금의 경찰들처럼 소작료의 적정성은 '자율'에 맞기고 단지 '폭력'에만 개입한 경찰은 당연히 지주측보다는 소작회원들을 잡아들여 구속하게 된다.

협상도 지지부진해 지고 더 이상 '구걸'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소작회쪽이 제시한 조건을 승낙하기 전에는 소작료를 바치지 않을 태도를 굳건하게 냉냉하게 지키며 투쟁을 이어나간다.

결국 소작인의 지주은 박복영은 암태도라는 조그만 지역을 벗어나 지역과 중앙언론을 이용하게 된다. 사건을 단시 암태도의 소작인과 지주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라도민 전체의 관심을 사회에 보여주는 일을 감행하고, 당시 동아일보를 이용해 기사화하게 된다. 섬이라는 특수성을 벗어나 뭍으로, 목포로 몰려가 항의하고 농성도 벌이고 그 과정에서 간부들이 구속이 되고, 다시 법원으로 항의농성을 벌이면서 지역이슈로 만들어 나간다.

여전히 경찰과 법원은 문제를 키울뿐이라며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며 다시 섬으로 돌아갈 것을 협박하지만 이것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치고빠지는 전술을 펼치면서 서울의 중앙언론에 나게되고 도지사가 나서고 경찰서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결국 지주는 소작료 40%에 합의하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가? 라는 물음을 계속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민중들에겐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지주와 가진자들에게 유리한 것은 '자율'에 맡기고 권력과 자본에 불리한 것은 '법'을 들이밀며 탄압하는 모습이 광복 63주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권력은 자본의 편이며 투쟁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농부나 노동자나 자신이 키우고 생산을 통해 얻은 소득에 대해서도 무단히 감사를 느껴야 하는 자기 신변의 불안감 -

지금의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킨 노동자들도 자신의 힘과 노력에 자부심을 가지기 보다는 기업주의 힘이며 권력의 힘으로 경제발전의 성과를 노동자 스스로 돌리는 모습 속에서 그 당시 소작인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여러 가지로 밑줄을 그어가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된 책이었다.

외부의 적보다 우리 내부의 적 - 내부의 각성과 그 내부를 이끌고 선도해 나갈 지도자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의 통일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힘을 이끌고 나갈 지도자와 간부의 역할 또한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일이란 방침을 바꾸면 거기에 반드시 다른 대책이 따라야 하네. 속임수에 넘은 변절자도 생기겠지. 그런 때는 그때대로 또 대책이 서는 거지. 물이 늪을 만나면 조용히 흐르고 여울을 만나면 소리를 내듯이 용납수가 이써야지. 시간이 자꾸 흐르는데 처음에 세운 방침만 고집해서는 거기서 생기는 무리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도 있어. 모두들 소작료가 높아서 못 살겠다는 것은 자기들 일이니까 그 목적만 잊지 않으면 되지"

가장 인상에 남았던 구절이다.

투쟁과 싸움의 목적을 잊지 않되 원칙만을 고집하지 않고 그때그때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

이명박 정부시대 - 우리가 가져야 할 전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