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 어디서나 누군가를 찾는 전화벨-

경차니 2011. 10. 11. 22:31

신경숙.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던 '엄마를 부탁해' 작가.

하지만 나는 신경숙의 소설이 이 책이 처음이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민주화운동이 한창인 시절-

정윤, 이명서, 윤미루, 단이.

 

정윤과 단이는 고향 친구이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닿을듯 말듯하다가 끝내 단이는 죽고,

이명서와 윤미루는 고향친구이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역시 결국 윤미루도 거식증이 도져 죽고 만다.

 

정윤은 엄마를 잃은 아픔이 있고 윤미루는 언니를 잃은 아픔이 있다. 그 아픔들은 윤교수라는 인물을 통해

4명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주고 이해하고 함께하며 치유하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평생의 단짝을 잃은 정윤과 이명서는 상실감과 충격에 헤어나지 못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각자 그 충격과 아픔을 감내하거나 포기한다.

 

결국 8년만에 윤교수의 임종을 앞두고 살아있는 정윤과 이명서는 만나게 된다.

 

 

내.가.그.쪽.으.로.갈.께.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다.

 

주인공들이 겪는 아픔들을 스스로 껴안고 솔직하게 터놓지 못하면서

주인공을 비롯한 4명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아파한다.

 

결국 서로에게 힘이되고 의지하는 것은 내가 그쪽으로, 상대편으로 가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한다.

 

정윤과 윤미루 집에 전화가 있었고 단이와 이명서는 끊임없이 전화를 하지만 정윤과 윤미루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일부러...

 

요즘처럼 어디서나 전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닌 집이던 특정한 장소나 공중전화를

이용해야만 하던 시절의 전화와 전화벨 소리.

 

'어디선가 나를 찾는'이 아닌 '어디서나 누군가를 찾는' 시대의 전화.

 

자신의 아픔과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서로간에 열정인 사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슬픔을 너무 잘 알고

상대의 슬픔의 깊이를 너무 잘 알기에 그 아픔을 소리없이 조용히 대신 삼켜주고

좋아한다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이 전반적으로 가라앉고 우울하다. 무겁다. 침울하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나 구성, 내용 모두 소설로서 읽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쭉~ 읽혔다.

 

인상깊었던 문구들을 소개하며...

 

윤교수가 첫강의에서 한 말.

 

"크리스토프(예수를 업고 강을 건너 구원을 받았다는 전설속의 인물)가 강을 건너가려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크리스토프의 귀에 어디선가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강가에 나가 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고 그 아이는 오늘 밤 저 강을 건너가야 한다며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지.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강물을 건너는데 갑자기 강물이 마구 불어나기 시작했네. 순식간에 크리스토프 키를 넘을 지경이었고,

아이도 강물이 불어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어. 그토론 자신만만하던 크리스토포는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어. 삿대로 겨우 균형을 유지하며 간산히 강 저편에 이르렀지. 크리스토프는 아이에게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그 순간 아이는 사라지고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예수가 눈앞에 나타났지. 그리고는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던 것이다"라고"

 

윤교수는 학생들을 향해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아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널 순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거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어 실어나르는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역설을 잘 음미하는 학생만이 무사히 저쪽 언덕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여러분에게 문학이나 예술은 여러분을 태워 강 저편으로 건네주는 것만이 아니네. 여러분이 신명을 바쳐

짊어지고 나가야 할 평생의 일이기도 한 것이네"

 

이 '역설'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것 같기도 하고...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무심코 잡은 손을 놓는 순간을 놓치면 곧 서먹해지고 어색해진다."

 

시작의 시점과 끝의 시점. 분명하고 단호하게!!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2MB처럼...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살아서, 살아서....제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윤교수가 세상을 떠나며 제자들에게 손바닥에 남긴 말을 모아보니,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깨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딪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이 되게."

 

나도 이런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