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이야기

118번째 노동절입니다.

경차니 2008. 4. 30. 15:31

내일, 5월 1일은 118주년 세계노동절 입니다.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미국에서 총파업 집회가 시작되었고, 5월 3일 경찰과 군대가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 파업·농성 중이던 어린 소녀를 포함한 모두 여섯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이어지면서 총파업으로 얻어 낸 8시간 노동제는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경찰관 살해를 교사하였다는 혐의로 파업 지도자 8명이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들 가운데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노조 지도자 스파이즈는 최후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려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는 없으리라.

 

- 당시 사형선고를 받은 미국 노동운동 지도자 스파이즈의 법정 최후진술 

재판에 회부된 8명의 지도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습니다. 이후 해마다 열리는 노동절 집회에서 으레 붉은 장미를 가슴에 꽂았습니다. 장미가 ‘진보’를 상징하는 '진보장미'로 기점이 된 것이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전세계에서 기념되는 '노동절'은 이 땅, 대한민국에서만 '근로자의 날'입니다. 노동절은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3월 10일(대한노총(현 한국노총) 창립일)로 생일이 바뀐 데다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근로자의 날’로 개칭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것이 1989년 민주노총이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연세대학교에서 100주년 노동절대회를 열고, 이후 해마다 경찰의 원천봉쇄와 싸우며 5월 1일 노동절을 지켜내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1994년에야 비로소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근로자의 날'을 변경합니다.

하지만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입니다.

‘노동’이 ‘근로’로 바뀐 이유는 자명합니다. 1963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노동통제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노동', '노동자'라는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계급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 이를 ‘근로’,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힘써 부지런히 일하다'는 의미의 '근로''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신을 씀, 또는 그런 행위'를 뜻하는 '노동'은 그 의미부터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작은 나사 하나도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않되는 ‘노동자들의 손으로 온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땅에선 자본가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에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모양입니다.

올 노동절은 백열여덟 돌을 맞았습니다. 1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이 땅의 노동자는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118년 전 8시간 노동을 외쳤지만 지금도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

하루 7명씩 일하다 죽어나가는,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것이 당연(?)한 나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앞에 언제까지 노동자들만 허리띠를 졸라메야 하는 나라.

몸이 아파도 치료비 걱정에 병원가기가 두려운 노동자와 우리 가족들.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는 급식까지 차별하는 나라.

자식들 공부시키려면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나라.

비정규직 연봉 1천만, 대학 등록금 1천만원인 나라.

 

이 땅의 대다수가 일해서 먹고살아가는 노동자이면서 노동자 죽이기에 혈안인 나라...

 

노동절 118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날을 단순히 '기념'만 하기엔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에겐 팍팍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