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올겨울 마지막 산행, 소백산

경차니 2009. 2. 23. 14:46

얼마전부터 '이번 겨울이 다 가기전에 눈이 오면 반드시 눈 산행을 하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마침내! 때는 왔다!

지난주 금요일 전국적으로 비와 눈이 왔다. 덕유산엔 대설주의보까지 발령되었다는 사실~을 안 나는 바로 산행계획에 돌입!

 

소백산이나 덕유산을 저울질 했다. 덕유산은 내가 사는 고양에서 너무 멀었다. 소백산도 가까운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겨울하면 태박산과 소백산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가?

 

사실 소백산은 겨울등반을 두번했었다. 다른 계절엔 가 본적이 없다.  -.-

10여년전에 한번, 6~7년전에 한번... (굉장히 오래되었군요~^^) 한번은 비로봉까지 갔었다.

태어나서 바람,바람, 그런 바람 처음 맞아봤다. 연화봉부터 비로봉까지 온 세상이 눈과 바람과 사람만 있었다.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 추위와 풍경의 느낌은 잊을 수 없었다.

 

두번째로 갔을땐 여러 후배들과 함께 갔었는데, 희방사코스로 오르다가 결국 연화봉에서 포기. 하산을 했었다. 그 땐 희방사에서 연화봉까지 '희방깔딱고개'가 전부 얼음판이었다.

함께 한 후배들은 겨울산은 처음이었고 아이젠으로 얼음을 찍어가며 그 소백산 바람을 이겨내며 가기엔 체력적으로 무리였었다. 비로봉까지 갔다간 하산하면서 해가 질것 같아 연화복에서 깨끗히 포기하고 다시 희방사로 내려와 라면을 끓이고 팩소주를 한잔씩 했던 기억이 있다.

 

세번째 도전인 이번 산행은 한껏 기대했다.

처음 갔을 때 봤던 눈천지 비로봉을 상상하며 말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맞추어놓았던 알람은 울리지 않았고(핸드폰 알람인데 기간설정을 '월-토'로 해 놓아 일요일엔 울리지 않았다는 전설이....) 부랴부랴 서둘렀지만 결국 동서울터미널에서 8시 단양행 버스를 2~3분 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원래 계획은 단양으로 가 천동코스로 올라 비로봉을 거쳐 삼가리코스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다음차는 9시... 계획 급변경~ 반대로 가기로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주행 버스가 8시15분에 있었다. 고속도로는 뻥 뚫려있었고 10시 45분에 영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침에 부랴부랴 나오느라 아침을 먹지 못했던 옆지기와 나는 삼가리행 버스를 기다리며 밥을 먹었다. 배도 든든하고 이제 버스타고 가면 끝~

 

하지만, 삼가리행 버스는 자주 있지 않았다. 9시30분 차 다음이 13시 20분 차.... 완전 OTL...

2시간여를 기다려야 한다. 

 

다시 두번째 계획 급변경!

희방사로 오르기로 하고 11시55분 버스에 올랐다.

영주에 도착할 때부터 날씨가 바람 한점없이 따뜻하더니 희방사 정류장에 내렸을 때에도 날씨는 변함없었다.

 

12시 35분부터 오르기 시작한 희방사 코스. 군데군데 얼음과 눈이 있었지만 그 옛날 얼음길과 바람은 없었다.

 

희방사코스로 가본적이 있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경사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아무리 눈과 얼음이 별로 없더라도 결코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다.

연화봉까지 4.4km라는 짧지않은 거리를 2시간 30분여만에 도착. 이미 시간은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연화봉에서 바라본 비로봉가 주변은 기대와는 다르게 눈을 온데간데 없고 나무에 핀 설화도 실망 그 자체였다. 바람 역시 예전만 못했다. (이건 다행이었다. ^^)

△희방폭포에서 한장!

 

 △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자락.

 

△연화봉에서 우리 옆지기~ 멀리 비로봉이 보인다.

 

 △연화봉까지 올라왔다는 확인~ 꽝! ^^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2시간을 더 가야한다. 결정의 기로에 섰다. 시간적으로 비로봉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죽령코스로 내려가기로 했다. 거리는 7km가 넘었지만 지도상 표시된 시간은 2시간이면 내려간다니 해가 지기전에 내려갈 수 있겠다 싶었다.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 내려오는 길은 지루함 그 자체였다. 겨울내내 내렸던 눈들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 얼거나 쌓여있었다. 길 옆으로 쌓인 눈은 어른 허리만큼 쌓여 있었다. 길은 천문대까지 차량이 오갈 수 있도록 시멘트도로로 포장되어 있었다. 평지도 없이 7km가 고스란히 내리막길 -. 올라오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없이 우리 둘만의 길이 되었다.

 

 

마침내 5시 10분. 죽령휴게소에 도착.

하지만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문제였다. 이곳 죽령휴게소에서 단양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2시차, 그리고 막차인 오후 5시 55분차가 있었다. 단양터미널에 문의전화해보니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막차는 6시30분, 이곳에서 단양터미널까지는 40~50분이 걸린단다.

 

아침에 올 때처럼 다시 아슬아슬하게 놓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히치하이킹도 몇번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이제 모든것을 포기하고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놓치면 청주로 가 서울로 올라가기로 하고, 하산을 했으니 목을 축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도토리묵을 안주삼아 동동주 한잔~ 이 맛에 등산하지~ ㅎㅎㅎ

 

정확히 5시55분에 도착한 버스. 우리는 타자마자 기사아저씨께 서울로 올라가는 막차를 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기사아저씨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갈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제 버스기사 아저씨만 믿을 수 밖에..

 

 

 

단양터미널에 도착하기 전 기사아저씨는 우리보고 내리라며 건너편에서 서울가는 버스가 있으니 타면 된다고 하셨다. 시간 맞추느라 달렸다는 말과 함께.. '오빠! 달려~!!^^'

 

6시 20분에 도착한 우리는 6시 35분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꼬이기 시작한 산행은 올때까지 꼬였지만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서 고생은 했지만 이것도 여행의 재미라면 재미~ (이렇게라도 생각해야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