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무비자 미국여행, 너의 정보를 다 밝혀라!

경차니 2008. 11. 18. 10:50

국가의 ‘편리’를 위해 국민을 관리한다?

 

11월 17일부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비자면제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부턴 여행자들은 미국 국토안보부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몇 가지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입국허가를 받으면 90일 이내의 미국방문은 비자 없이 가능합니다.(이것이 미국미자면제프로그램입니다 VWP) 예전처럼 미국대사관에 길게 늘어선 줄로 대표되던 미국방문을 위한 비자발급이 한결 편리해졌다고 난리입니다. 마치 미국의 '성은'이라도 입은양 정부도 의기양양합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엔 한국인을 예비범죄자, 예비테러리스트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 동안 VWP(미국비자면제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에 가입하기 위해 전자여권을 도입하고, 여행자정보 를 공유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전자여행허가제(ESTA) 등 미국이 한국에 요청한 모든 조건을 수용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무언가를 미국과 외교를 통해서 얻었다기 보다는 미국이 요구하는데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맞추어준것에 불과합니다.

 

특히 지난달에는 미국과 여행자정보 공유협정, 공식적으로는 “범죄 예방과 대처를 위한 협력 증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 협정은 미국 정보기관이 지문을 이용하여 한국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수사자료표”를 조회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사자료표”는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정의되어 있고, 지문을 포함한 개인정보, 범죄기록 등의 정보 등을 기록하고 있다. 위의 법에서는 민감한 개인정보라고 할 수 있는 수사자료표의 조회가 가능한 경우들을 엄격하게 지정해놓고 있는데, 이번 협정에 해당되는 조항이 없어서 현재 국회에서의 비준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즉, 현행법과 충돌하는 협정인 것입니다.

 

미국 방문한다고? 너의 정보를 다 밝혀라!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국경(공항이나 항만 등)에서 한국 여행자로부터 수집한 지문정보를 이용해 자동조회시스템을 통해 검색을 합니다.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범죄의 수사 및 예방을 위한 지문 정보 시스템”에서 같은 지문이 있으면 "Yes" 없으면 “No"를 돌려주는 시스템입니다. 이 때 결과가 "Yes"라면 해당 개인의 지문, 출생지, 유죄판결, 해당상황에 대한 기술 등을 포함한 수십 개의 개인정보 및 참고자료가 추가적으로 미국에 전송됩니다.

 

미국이 현재도 입국 외국 여행자에 대한 지문날인을 시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미국이 스스로 구축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데이터베이스만을 이용해 검사를 해보는 것이었다면, 이제 한국 여행자들에 대해서는 한국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범죄의 수사와 예방을 위한 지문 데이터베이스”도 마음대로 이용하여 검사를 해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최초로 이런 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즉, 다른 국적의 여행자들에 비교해봤을 때 한국 여행자들에 대한 두 배의 지문날인 검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더 예비범죄자 혹은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하는 것이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비자‘제도’

 

외교통상부는 그 동안 이런 범죄기록이나 개인정보들이 이미 미국비자를 받을 때도 제출해야 했던 정보들이라고,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고 답변해 왔습니다. 우리는 같은 이유에서 이것은 비자면제 프로그램이 아니며, 새로운 비자제도라고 말하고 있고, 유럽연합 역시 미국의 새 프로그램이 새로운 비자제도인 것 같다면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화된 VWP에 대해서는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 등 34개국 주미 대사관이 인권침해 등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동명의로 미국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비자협정도 양국 간의 범죄정보를 교환하고 있지는 않음을 생각해보면 이제 막 시작되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은 세계 어느 비자심사보다 강력한 비자“면제”프로그램인 셈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과거 비자심사 때에는 개인들이 제출하는 정보들에 의존해 심사해오던 것을, 이제 개인이 제출하는 정보와 함께 한국 정부가 구축해놓은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하여 더욱 강력한 심사를 손쉽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처토프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말했던 것처럼 동맹국의 여행자들에 대해서도 개개인 여행자별로 세세한 검사가 가능해졌다. 즉, 인간에 대한 강력한 “검역주권”을 확보한 셈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의심 때문에 타인이 이동할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군가 범죄를 저질러 형벌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다시 사회로 돌아와 사회구성원으로 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하나로 특정국가로 입국할 수 없다거나 그런 이유로 개인의 정보들이 다 공개되어져야 하나요?

 

정부는 이 모든 것이 국민의 편리를 위해서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은 국민의 편리가 아니라, 국민을 관리하는 국가의 편리이며, 누군가를 낙인찍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폭력의 편리입니다.

 

 

 

* 이 글은 인권단체연석회의의 보도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